차심사역#3. 문턱 앞에서: 벽을 마주한 꿈의 여정

이상과 현실 사이,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

창업생태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내 꿈은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갔다. 대전이라는 과학기술의 메카에서, 혁신적인 기술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투자자가 되는 것. 그 꿈을 향한 첫 발걸음으로 대전 지역의 유수 AC/VC들을 조사했다.

미래과학기술지주, 한국과학기술지주, 에트리홀딩스, 블루포인트파트너스… 대전의 빅4라 불릴 만한 이 기관들은 내게 단순한 직장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.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미래 기술의 흐름을 읽고, 혁신을 이끌어갈 창업가들의 동반자가 된다는 선망이였다.

1년 전, 첫 도전은 미래과학기술지주였다. 임인기 실장님과의 면접 일정을 조율하면서, 압박면접에 대한 당부를 들었다. “일련의 과정이고 대표님의 스타일이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.” 그 말에 긴장감과 함께 각오를 다졌다.

면접 당일, 심사역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고, 어떤 심사역이 되고 싶은지 포부를 밝히는 자리였다. 질문이 이어졌다.

“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?”

나는 평소 생각대로 대답했다. “로봇, 자율주행, AI, ICT, 바이오 분야에 관심이 있습니다.”

그러나 그 다음 질문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.

“그렇다면 로봇 분야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?”

그 질문은 나의 준비 부족을 정확히 짚어냈다. 그 순간 스스로의 한계를 분명히 느꼈다. ‘아,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.’ 배우고 싶다는 의지만 앞섰던 것은 아닐까? 정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전력감이 되기에는 내 준비가 한참 모자랐다.

“어떻게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할 계획인가요?”

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임기응변으로 답했다. “논문을 많이 읽고 관련 딥테크의 트렌드를 파악해서, 그러한 방향을 연구하는 창업팀에 투자하겠습니다.” 말을 내뱉는 순간, 내 대답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.

면접이 끝나고 김판건 대표님의 총평이 귓가에 맴돌았다. “경영지원에 가깝다.” 그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었다.

그 후로 다른 투자회사들에 지원했지만, 서류 단계에서 계속 탈락했다. 미래과학기술지주, 한국과학기술지주, 에트리홀딩스… 하나같이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. 점차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. ‘이 업계는 이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 건가? 각 투자 섹터의 전문가급 고학력 연구원만 뽑는 건가?’

좌절감과 회의감이 밀려왔다. 그러나 동시에 의문도 커졌다. 어떻게 해야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? 학교를 더 다니고 공부해야만 자격이 생기는 걸까? 아니면 애초에 내게는 불가능한 길인 걸까?

나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. 트위니에서 내가 맡은 물류로봇 신사업에 더 깊이 몰입하며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로 했다. 때마침 회사 구조조정으로 사업부서로 이동하게 된 것은 어쩌면 기회였는지도 모른다.

또한, 심사역이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탐구했다.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님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. “심사역이 되려면 세 가지 중 하나는 갖추어야 한다. 정말 똑똑하거나, 정말 트렌디하거나, 정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거나.” 나는 어느 카테고리에 속할 수 있을까?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?

답답한 마음에 조언을 구할 곳을 찾던 중, 우연한 기회에 오랜 스승님과 재회하게 되었다. 그 만남이 앞으로의 여정에 어떤 도움이 될지,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.

높게만 느껴졌던 진입장벽 앞에서 한동안 방황했지만, 이제는 한 걸음씩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. 길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, 나는 다음 단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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